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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안티구아 여행 (산타카탈리나아치, 세로데라크루스, 파카야화산)

by nimonga 2026. 5. 20.

여행을 준비할 때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 중 하나가 "거기 갔다 왔는데 뭐 했냐"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많이, 더 힘든 코스를 억지로 넣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안티구아를 앞두고도 저는 그랬습니다. 직접 다녀온 후에야 그 걱정이 얼마나 쓸데없었는지 알게 됐습니다.

산타 카탈리나 아치,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낫습니다

안티구아(Antigua Guatemala)는 과테말라의 구 수도로,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UNESCO World Heritage Site)으로 지정된 도시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란 인류 전체가 보호해야 할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으로, 전 세계에서 엄격한 기준을 통해 선정됩니다. 이 지정이 단순한 훈장이 아니라는 건, 도시 안에 직접 들어서면 바로 체감이 됩니다.

Arco de Santa Catalina, 즉 산타 카탈리나 아치는 17세기에 지어진 구조물로 수녀원과 길 건너 학교를 연결하던 통로였습니다. 제가 직접 가봤는데, 사진으로 수십 번 보고 갔음에도 실제로 마주쳤을 때의 느낌은 달랐습니다. 노란 아치 너머로 아구아 화산(Volcán de Agua)이 정확히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구도가, 어쩌다 그렇게 맞아떨어진 건지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같은 장소를 오전과 저녁 두 차례 찾았습니다. 오전에는 화산 윤곽이 선명하게 보이고, 저녁에는 거리 조명이 노란 벽에 반사되면서 전혀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어느 쪽이 낫다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두 시간대가 다 좋았는데, 굳이 고르라면 저는 저녁 쪽에 더 마음이 갔습니다.

안티구아는 도시 전체가 콜로니얼 건축(Colonial Architecture) 양식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콜로니얼 건축이란 16~18세기 스페인 식민 지배 시기에 지어진 건축 양식으로, 바로크적 장식과 아치형 회랑이 특징입니다. 산타 카탈리나 아치는 그 양식의 대표 상징이자, 안티구아라는 도시 자체를 한 장면으로 압축해 보여주는 장소였습니다.

세로 데 라 크루스, 화산 등반 없이 얻는 최고의 전망

안티구아를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아카테낭고(Acatenango) 올라갔냐"는 것이었습니다. 아카테낭고 화산 트레킹은 왕복 약 16~20시간, 최고 해발 3,976m에 달하는 코스로 세계적으로도 난이도 높은 트레킹으로 꼽힙니다. 체력적으로 부담이 크다는 후기를 여러 차례 확인한 저는 다른 선택지를 찾았고, 그게 Cerro de La Cruz였습니다.

세로 데 라 크루스는 안티구아 북쪽 언덕 위에 있는 전망대로, 도보로 30분 내외면 오를 수 있습니다. 오르는 길이 가파르지 않아 평소 등산을 즐기지 않는 분들도 충분히 올라갈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올라가보니 전망대에 도착하는 순간 시야가 완전히 열리면서, 붉은 지붕이 빼곡한 안티구아 시내와 그 뒤를 감싸는 아구아 화산이 한 화면 안에 들어왔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가볍게 다녀오는 코스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풍경 앞에 서니 말문이 막혔습니다. 벤치에 앉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만 봤는데, 그 시간이 이번 여행 전체를 통틀어 가장 고요했습니다. 멀리서 교회 종소리가 들렸고, 바람이 꽤 시원했습니다.

안티구아에서 왜 '슬로우 트래블(Slow Travel)'이라는 개념이 자주 언급되는지 그 전망대에서 조금 이해했습니다. 슬로우 트래블이란 이동보다 체류에 집중하며 도시의 리듬과 일상에 맞게 천천히 여행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안티구아는 빠르게 돌고 나오는 도시가 아니라, 속도를 낮출수록 더 많이 남는 곳이었습니다.

파카야 화산, 활화산을 가장 가까이서 만나는 방법

아카테낭고를 대신해서 선택한 Pacaya Volcano 투어가 결과적으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겼습니다. 파카야는 해발 2,552m의 활화산(Active Volcano)으로, 안티구아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활화산이란 현재도 분화 활동이 진행 중이거나 근래에 분화한 기록이 있는 화산을 가리킵니다. 파카야는 1961년 이후 지속적으로 활동 중이며, 등반 당일에도 분기공(噴氣孔, fumarole)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분기공이란 화산 지형에서 가스와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구멍을 말하며, 활화산이 살아 있다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입니다. 검은 화산암(Volcanic Rock) 위를 걷는 구간에서는 신발 밑으로 열기가 전해졌고, 가이드가 그 열기를 이용해 마시멜로를 구워주는 체험도 있었습니다. 단순한 이벤트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화산 지열로 음식이 익는 걸 눈앞에서 보니 이게 진짜 활화산 위라는 실감이 생생하게 왔습니다.

과테말라는 환태평양 조산대(Ring of Fire)에 위치해 37개의 화산이 분포하고 있으며, 이 중 3개가 활화산으로 분류됩니다(출처: 과테말라 국립지진화산재해연구소 INSIVUMEH). 파카야는 그 중에서도 접근성이 가장 높은 화산이라, 화산 트레킹 입문 코스로 꼽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안티구아에서 화산 투어를 선택할 때 확인해야 할 핵심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 가이드 자격증 보유 여부 및 현지 공인 투어사 이용
  • 등반 난이도와 예상 소요 시간 (파카야 기준 왕복 3~4시간)
  • 우기·건기 시즌 여부 (과테말라 우기는 5~10월로 오후에 비가 많음)
  • 개인 안전 장비(등산화, 우비, 스틱) 준비 여부

제 경험상 이 네 가지만 확인해도 투어에서 예상치 못한 당황스러운 상황은 대부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안티구아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 조급함을 버리는 것입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무의식중에 비교가 생깁니다. "아카테낭고를 안 가면 안티구아를 제대로 본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대표적입니다. 제가 출발 전에 꽤 오래 그 고민을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완전히 쓸데없는 걱정이었습니다.

안티구아는 화려한 액티비티보다 도시의 질감을 온몸으로 느끼는 여행지입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지(Historic Ruins of Colonial City)를 천천히 걷다 보면, 무너진 성당의 벽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 지역의 역사 보존과 관광 데이터에 따르면 안티구아는 연간 약 12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는 과테말라 최대 관광지입니다(출처: 과테말라 관광청 INGUAT).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방문객 수가 많다고 해서 북적거리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세로 데 라 크루스의 전망대에서도, 산타 카탈리나 아치 앞에서도, 관광객들이 주변에 있었지만 이상하게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유지됐습니다. 사람들이 이 도시 앞에서 자연스럽게 속도를 낮추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안티구아는 결코 단순하지 않은 도시입니다. 산타 카탈리나 아치에서 콜로니얼 건축의 정수를 보고, 세로 데 라 크루스에서 도시 전체를 한눈에 조망하고, 파카야 화산에서 과테말라가 왜 화산의 나라인지를 몸으로 느끼는 것. 이 세 가지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깊은 여행이 됩니다.

다음에 다시 간다면 핀카 필라델피아(Finca Filadelfia) 같은 커피 농장에서 하루를 온전히 보내고 싶습니다. 과테말라 커피는 고산지대 특유의 테루아(Terroir, 토양과 기후가 만들어내는 고유한 맛)가 강하게 살아 있는 걸로 유명한데, 그 맛의 배경을 생산지에서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여행의 시작도, 끝도 결국은 안티구아가 될 것 같습니다.


참고: - 과테말라 국립지진화산재해연구소 (INSIVUMEH): https://insivumeh.gob.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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