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구아에서 워낙 잘 정돈된 여행 인프라를 경험하고 넘어왔던 터라, 처음 셀라(Xela - 케살테낭고를 현지에서 셀라로 부른다.)에 발을 디뎠을 때는 다소 투박하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습니다. 당장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관광지도 없고, 외국인 여행자를 위한 간판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며칠을 머물다 보니, 오히려 그 날것의 분위기가 이 도시의 정체성이라는 걸 조금씩 이해하게 됐습니다.
고산도시 셀라, 처음엔 낯설고 나중엔 익숙해지는 곳
케살테낭고는 해발 약 2,330m에 위치한 고산도시입니다. 여기서 고산도시란 평지가 아닌 산악 지형 위에 형성된 도시로, 기압이 낮고 산소 농도가 상대적으로 희박한 환경을 뜻합니다. 실제로 도착 첫날 조금만 빠르게 걸어도 숨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고, 저녁이 되면 기온이 뚝 떨어져서 긴 소매를 꺼내 입어야 했습니다.
안티구아나 파나하첼처럼 외국인 여행자 중심으로 설계된 도시가 아니라는 점이 처음엔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며칠을 지내보니, 셀라의 진짜 매력은 오히려 그 현지인 밀도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 곳곳에 마야 원주민 문화가 일상처럼 녹아 있고, 재래시장에서 오가는 말들도 스페인어와 키체어(K'iche')가 뒤섞여 들립니다. 키체어란 과테말라 마야 원주민이 사용하는 토착 언어로, 케살테낭고 지역에 특히 화자가 많이 분포해 있습니다.
과테말라 전체 인구 중 약 41%가 마야 원주민 계통으로 분류되며, 케살테낭고는 그 비율이 특히 높은 지역 중 하나입니다(출처: 과테말라 국가통계청 INE). 이 도시에서 며칠을 보내면, 숫자로만 알던 문화적 다양성이 실제 풍경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셀라에서 기억에 남는 장소를 꼽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푸엔테스 헤오르히나스(Fuentes Georginas): 시내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의 고산 온천
- 산타 마리아 화산(Volcán Santa María): 새벽 트레킹으로 유명한 성층화산
- 파르케 센트랄(Parque Central): 현지인들의 일상이 펼쳐지는 중앙광장
- 재래시장: 키체 문화권 특유의 직물과 농산물이 가득한 로컬 시장
온천과 화산, 몸으로 느끼는 케살테낭고
푸엔테스 헤오르히나스는 제가 셀라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였습니다. 올라가는 도로부터 달랐습니다. 차를 타고 산을 오를수록 안개가 짙어지고 기온이 낮아졌는데, 그 분위기 자체가 이미 어딘가 특별한 장소에 가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온천은 지열 활동(geothermal activity)에 의해 자연적으로 뜨거운 물이 솟아오르는 곳입니다. 지열 활동이란 지구 내부의 열에너지가 지표면 가까이로 올라와 온수나 증기를 만들어내는 현상으로, 화산대 인근 지역에서 특히 자주 나타납니다. 과테말라 자체가 환태평양 조산대(Pacific Ring of Fire) 위에 위치해 있어, 이런 지열 자원이 풍부한 편입니다. 환태평양 조산대란 태평양을 둘러싸고 있는 화산·지진 활동이 집중된 지대를 뜻하며, 전 세계 활화산의 약 75%가 이 지대에 몰려 있습니다(출처: 미국 지질조사국 USGS).
제가 직접 들어가 보니 물온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었고, 차가운 고산 공기와 맞닿는 순간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광경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트레킹 이후에 들렀는데, 쌓였던 근육 피로가 확실히 풀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규모가 크거나 시설이 현대적인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소박한 산속 분위기가 오히려 억지스럽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온천 밖으로 나왔을 때 체감온도 차이가 상당하니, 겉옷은 꼭 챙겨야 합니다. 이건 경험에서 나온 말입니다.
산타 마리아 화산 트레킹은 결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아직 어두울 때 헤드랜턴을 켜고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초반부터 경사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산타 마리아는 성층화산(stratovolcano)으로 분류되는 지형입니다. 성층화산이란 용암과 화산재가 반복적으로 쌓여 만들어진 원뿔 형태의 화산으로, 경사가 가파르고 높이 솟아오른 구조를 가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해발 3,772m에 이르는 이 화산은 중간중간 숨을 고르지 않으면 고소증(altitude sickness) 증상이 올 수도 있습니다. 고소증이란 고도가 높아질수록 산소 분압이 낮아져 두통, 어지럼증, 호흡 곤란이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힘들긴 했지만 뒤를 돌아볼 때마다 케살테낭고 시내가 점점 작아지는 풍경이 펼쳐졌고, 그게 계속 올라갈 이유가 됐습니다. 정상에서는 날씨가 맑으면 활화산인 산티아기토(Santiaguito)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사진으로 보는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구름 아래로 화산 지형이 펼쳐지고, 그 한가운데 실제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면 과테말라라는 나라가 얼마나 지질학적으로 역동적인 땅인지가 피부로 느껴집니다.
화산트레킹 이후, 케살테낭고를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
케살테낭고는 빠르게 소비하는 여행지가 아닙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하루 이틀 짧게 스쳐가면 투박하다는 인상만 남고 끝납니다. 며칠 여유를 두고 머물 때 비로소 이 도시의 밀도가 느껴집니다.
트레킹 전날에는 무리하지 말고 고도 적응을 먼저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해발 2,000m 이상 지역에서는 도착 첫날 격렬한 활동을 자제하는 것이 고소증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트레킹 다음 날 푸엔테스 헤오르히나스에서 온천으로 피로를 푸는 순서가 저한테는 잘 맞았습니다.
케살테낭고는 안티구아나 아티틀란 호수 일정 이후에 넣으면 여행 흐름이 훨씬 다채로워집니다. 이미 정제된 관광 도시를 경험한 뒤 셀라에 오면, 이 도시의 날것 같은 분위기가 낯섦보다 신선함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화려한 스팟을 빠르게 찍는 여행보다, 도시의 공기와 리듬 자체를 경험하고 싶은 분이라면 케살테낭고는 충분히 그 기대에 답해주는 곳이었습니다.
참고: - 과테말라 국가통계청 INE: https://www.ine.gob.gt
- 미국 지질조사국 USGS: https://www.usgs.g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