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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칼라르 호수 (바칼라르, 로스 코칼리토스, 산 펠리페 요새)

by nimonga 2026. 5. 10.

bacalar

호수인데 바다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칸쿤의 카리브해를 보고 감탄했던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바칼라르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그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았습니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 남쪽 끝, 벨리즈 국경 바로 위에 자리한 이 호수 마을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가 됐습니다.

7가지 빛깔 호수, 바칼라르란 어떤 곳인가

바칼라르는 칸쿤에서 차로 약 5시간 거리에 있는 체투말(Chetumal) 인근에 자리합니다. 체투말은 멕시코와 벨리즈 양국의 지역 상업 중심지로 기능하는 도시인데, 많은 여행자들이 바칼라르 호수를 보기 위해 체투말 공항을 통해 입성합니다. 저도 그렇게 이 마을에 처음 발을 들였습니다.

바칼라르 호수의 공식 명칭은 라구나 데 시에테 콜로레스(Laguna de Siete Colores), 즉 '일곱 빛깔 석호'입니다. 석호(潟湖, lagoon)란 바다나 호수와 이어지면서도 지형적으로 반쯤 분리된 얕은 수역을 뜻합니다. 수심에 따라 빛의 굴절과 흡수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얕은 구간은 연한 민트빛으로, 깊어질수록 짙은 코발트블루로 물색이 변합니다. 그 경계가 뚜렷하게 나뉘면서 마치 팔레트처럼 일곱 가지 색조가 한 호수 안에 공존하는 것입니다.

직접 눈앞에서 마주했을 때의 첫 느낌은 솔직히 말하면 '이게 진짜 호수가 맞나' 하는 어리둥절함이었습니다. 칸쿤 카리브해에서 보던 에메랄드빛과 거의 다르지 않았거든요. 다만 해변이 아니라 호숫가 뒤로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파도 없이 잔잔한 수면이 거울처럼 하늘을 그대로 반사하는 점이 달랐습니다. 그 고요함이 오히려 더 강하게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바칼라르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예능 프로그램 '서진이네' 방영 이후입니다. 덕분에 한국 여행자들의 방문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이야기를 현지에서도 들었습니다. 바칼라르의 지리적·생태적 특성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체투말 항목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침, 오후, 저녁 — 시간대별로 전혀 다른 호수

제가 바칼라르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최소 2박을 머문 것입니다. 하루만 있었다면 이 호수의 진짜 얼굴을 절반도 못 봤을 것입니다. 아침, 오후, 저녁이 완전히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거든요.

사람 없는 이른 아침의 바칼라르는 색감이 가장 또렷한 시간대였습니다. 수면 위로 햇살이 막 내려앉는 순간, 빛의 굴절(屈折, refraction) — 빛이 물속으로 들어가며 방향이 꺾이는 현상 — 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각 구간의 색 경계가 뚜렷해집니다. 사진을 찍기에도 이 시간이 압도적으로 좋았습니다. 바람도 없어 수면이 흔들리지 않으니까요.

오후가 되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The Yak Lake House 같은 호스텔에서는 투숙객이 아니어도 카약과 세일링 투어를 즐길 수 있는데, 오후의 바람이 살짝 불어올 때 패들보드 위에 서 있으면 그게 또 다른 쾌감입니다.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해먹에 누운 채 칵테일 한 잔을 홀짝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도 자연스럽게 느슨해졌습니다. 그 여유가 칸쿤의 리조트 비치와는 결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저녁.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석양(夕陽)이 수면에 내려앉으면서 호수 전체가 분홍빛과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데, 하늘과 물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온 세상이 한 색으로 잠기는 그 순간이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있었는데 셔터 누르는 걸 잠시 잊었을 정도였습니다.

세노테의 새로운 얼굴, 로스 코칼리토스

바칼라르 센트로에서 택시를 타면 약 10분 거리에 로스 코칼리토스(Los Cocos)가 있습니다. 택시비도 부담 없는 수준이라 대중교통 걱정 없이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세노테(cenote) 중 하나입니다. 세노테란 석회암 지형이 함몰되거나 침식되면서 형성된 천연 수영 웅덩이 혹은 지하수계와 연결된 담수 구덩이를 뜻하는데, 유카탄 반도 일대에만 수천 개가 분포해 있습니다.

제가 이전에 방문했던 도스 오호스(Dos Ojos) 세노테는 천장이 있는 동굴 지형 속으로 잠수해 들어가는 형태였는데, 로스 코칼리토스는 그것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천장 없이 하늘이 열려 있는 개방형 세노테라 빛이 수면까지 그대로 내려오고, 물속에 있어도 답답함이 전혀 없었습니다. 세노테의 새로운 유형을 경험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입니다. 스트로마톨라이트란 광합성을 하는 남세균(시아노박테리아)이 수십억 년에 걸쳐 층층이 쌓아올린 암석 구조물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 활동의 흔적 중 하나입니다.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입니다. 수면 아래 암석처럼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살아서 숨 쉬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절대로 밟거나 건드리지 않아야 합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을 모르고 들어오는 여행자가 꽤 많았는데, 현장에서 안내 표지를 꼭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로스 코칼리토스는 넓은 공원 안에 자리 잡고 있어서 수영 후 잔디밭에서 쉬기도 좋았고, 물에 잠긴 해먹과 그네가 포토스팟으로도 인기가 높았습니다. 세노테의 생태학적 가치에 대해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유카탄 반도 항목에서 관련 배경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산 펠리페 요새에서 석호 전체를 내려다보다

바칼라르에 이런 역사가 있다는 걸 여행 전엔 전혀 몰랐습니다. 산 펠리페 요새(Fortaleza San Felipe)는 1729년에 카리브해를 누비던 해적을 막기 위해 지어진 군사 방어 시설입니다. 당시 이 일대는 해적의 침입이 잦았고, 스페인 식민지 세력은 석호 수로를 장악하기 위해 이 요새를 전략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운영 중인데, 내부에 당시 해적에 맞섰던 무기와 생활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 자체는 소박한 편이었지만, 요새 성벽 위에 올라서는 순간의 경치가 모든 것을 보상해줬습니다. 석호 전체가 한눈에 펼쳐지는데, 그 광활한 수면 위로 일곱 빛깔이 펼쳐진 풍경은 지상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바칼라르에서 꼭 챙겨야 할 포인트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바칼라르 호수 아침 방문 — 인파가 몰리기 전, 수면 색이 가장 선명한 골든 아워를 노린다.
  2. The Yak Lake House 카약 또는 세일링 투어 — 비투숙객도 이용 가능하며, 호수 위에서 색 변화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3. 로스 코칼리토스 세노테 방문 — 개방형 지형에서 스트로마톨라이트를 관찰하되 절대 접촉하지 않는다.
  4. 산 펠리페 요새 성벽 — 석호 전경 감상 포인트로 오후 빛이 드는 시간대가 사진에 유리하다.
  5. 호숫가 일몰 감상 — 오후 5시 이후 카페나 발코니에서 자리를 잡아두는 것이 좋다.

요새 내부에서 식민지 시대의 대포와 방어 구조물을 보고 있으면, 이 평화로운 호수 마을이 한때는 전략적 요충지였다는 사실이 새삼 묘하게 느껴집니다. 아름다운 풍경 뒤에 이런 층위가 쌓여 있다는 것이 바칼라르를 더 입체적인 여행지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사진을 다시 들여다봐도, 그 색과 바람과 공기의 감각은 화면 속에 없었습니다. 바칼라르에 다녀온 사람들이 하나같이 "직접 가봐야 안다"고 말하는 이유를 몸소 이해했습니다. 만약 멕시코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칸쿤에서 하루 이틀을 더 내어 이 고요한 호수 마을에 머물러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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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www.britannica.com/place/Chetumal
https://kr.trip.com/moments/theme/destination-bacalar-17822-comprehensive-guides-99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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