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도시를 여행한다는 건 박물관 몇 곳을 둘러보는 일일까요? 산타클라라에 직접 가보기 전까지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1958년 체 게바라가 이끈 마지막 전투의 무대이자 쿠바 혁명의 성지로 불리는 이 도시는, 역사의 무게와 현지인의 일상이 같은 골목 안에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때 느낀 건 단순한 감동이 아니라 일종의 당혹감이었습니다.
체 게바라 기념관, 동상 아래서 모자를 벗다
산타클라라 시내에서 택시를 타면 10분도 안 돼 기념관 앞에 섭니다. 광장에 내리는 순간 제일 먼저 보이는 건 22미터 높이의 청동 동상(bronze monument)입니다. 청동 동상이란 청동 합금을 주조해 만든 대형 조각물로, 야외 환경에서 수십 년이 지나도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내구성 때문에 기념비 제작에 즐겨 쓰입니다. 군복 차림에 소총을 들고 남미 방향을 향해 손을 뻗은 체의 모습은, 사진으로 수백 번 봤어도 실물 앞에서는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동상 받침대에는 체 게바라가 피델 카스트로에게 남긴 작별 편지가 새겨져 있습니다. 볼리비아 밀림으로 떠나기 전 쓴 이 편지는 쿠바 혁명사에서 가장 유명한 1차 사료(primary source)에 해당합니다. 1차 사료란 역사적 사건을 직접 겪은 당사자가 남긴 문서나 기록물을 뜻합니다. 편지 내용을 천천히 읽으면서 저는 꽤 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기념관은 크게 세 공간으로 나뉩니다. 동상이 있는 광장, 지하의 영묘(mausoleum), 그리고 박물관입니다. 영묘란 유해를 안치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기념 건축물을 의미합니다. 영묘 내부에는 볼리비아에서 발굴된 체와 동료 게릴라들의 유해가 벽감 형태로 안치되어 있고, 피델 카스트로가 직접 점화했다는 영원의 불꽃이 각 유해 옆에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내부는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고 모자도 벗어야 합니다. 입장하기 전에 제 카메라를 짐 보관소에 맡겼는데, 그 순간부터는 그냥 여행자가 아니라 조문객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박물관 전시실에는 체의 어린 시절 사진부터 의대생 시절 자료, 베레모, 권총, 그리고 천식 흡입기까지 개인 유품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천식을 안고 게릴라전을 치렀다는 사실이 유품 하나로 실감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광장은 매우 넓고 그늘이 거의 없으니 방문 전 모자와 생수를 꼭 챙기시길 권합니다. 월요일은 휴관이고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운영합니다.
장갑열차 기념비, 혁명을 결정지은 불도저 한 대
체 기념관에서 도보로 20분쯤 걸으면 장갑열차 기념비(Monumento a la Toma del Tren Blindado)에 닿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야외에 덩그러니 놓인 낡은 객차 몇 량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서 보니 그 자리가 주는 무게감이 달랐습니다.
1958년 12월 28일, 체 게바라의 게릴라 부대는 불도저로 철로를 걷어내 바티스타 정권의 무장 병력 수송 열차를 탈선시켰습니다. 탈선(derailment)이란 열차가 레일에서 이탈하는 사고 혹은 의도적 파괴 행위를 뜻하는데, 이 경우는 혁명군의 군사 전술로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탈선 이후 병사들은 투항했고, 혁명군은 막대한 무기와 탄약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로부터 불과 이틀 뒤인 12월 30일 산타클라라가 함락되었고, 이 소식이 아바나에 전해지자 바티스타는 1959년 1월 1일 새벽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열차 한 편의 탈선이 사실상 쿠바 혁명(Cuban Revolution)의 마지막 퍼즐을 맞춘 셈입니다.
현재 탈선된 실제 객차 네 량이 그 자리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내부에 들어가 당시 무기와 통신 장비, 군복 등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객차들 옆에는 그 유명한 노란 불도저가 조형물처럼 전시되어 있었는데, 제가 직접 가보니 생각보다 소박한 크기였습니다. 이 작은 기계 하나가 역사의 흐름을 바꿨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쿠바 연대 캠페인(Cuba Solidarity Campaign)에서도 이 전투를 쿠바 혁명의 결정적 분기점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체크리스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체 기념관에서 도보 약 20분, 비달 공원에서는 도보 약 15분 거리입니다.
- 입장료는 매우 저렴하지만, 카메라를 지참할 경우 카메라 사용료가 별도로 부과될 수 있습니다.
- 야외 시설이므로 한낮보다는 오전 일찍 또는 오후 늦게 방문하는 것이 훨씬 쾌적합니다.
- 객차 내부는 좁고 조명이 어두우므로, 스마트폰 손전등을 미리 켜두면 전시물을 더 잘 볼 수 있습니다.
비달 공원, 혁명의 거리에서 도미노를 두는 사람들
비달 공원(Parque Vidal)은 체 기념관이나 장갑열차 기념비와는 결이 완전히 다른 공간입니다. 처음 들어섰을 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싶었습니다. 혁명의 성지에 왔는데, 눈앞에는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노인들이 벤치에서 도미노 패를 내려놓는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공원은 식민지 시대(colonial era) 건물들로 둘러싸인 중앙 광장입니다. 식민지 시대란 스페인이 쿠바를 통치하던 16세기부터 19세기 말까지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북쪽에는 1885년에 지어진 신고전주의(neoclassical) 양식의 라 카리다드 극장(Teatro La Caridad)이 자리하고 있는데, 신고전주의란 고대 그리스·로마 건축의 대칭성과 기둥 구조를 18~19세기에 재해석한 양식을 말합니다. 이 극장은 쿠바에 남아 있는 19세기 8대 극장 중 하나로 꼽힙니다. 건물 정면만 봐도 당시 이 도시에 얼마나 많은 자본이 유입됐는지 짐작이 갔습니다.
공원 동쪽에는 산타클라라 리브레 호텔(Hotel Santa Clara Libre)이 있습니다. 외벽을 자세히 보면 1958년 전투 당시 정부군 저격수와 혁명군이 교전하며 생긴 총탄 자국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호텔 외벽 앞에 꽤 오래 서 있었습니다. 그 구멍들이 관광용 조형물이 아니라 실제 총알이 박혔다 빠진 흔적이라는 걸 생각하면, 가슴 어딘가가 묘하게 무거워졌습니다. 대형 쿠바 국기와 각종 선전 문구들이 건물 곳곳에 붙어 있어, 이 나라의 정치적 특색이 얼마나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지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해 질 무렵의 공원이 특히 좋았습니다. 과야베라 셔츠(guayabera shirt)를 입은 노인들이 그늘진 벤치에 앉아 시가 연기를 내뿜고, 젊은이들은 휴대폰을 손에 쥔 채 무료 와이파이 신호를 잡으려 한데 모여들었습니다. 일요일 저녁 8시 무렵에는 시립 악단이 공원 중앙의 가제보(gazebo), 즉 개방형 정자에서 무료 콘서트를 열기도 합니다. 가제보란 지붕은 있되 벽면이 없는 개방형 야외 정자 구조물을 말합니다. 단손(danzón)의 선율이 광장에 퍼지면 동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짝을 이뤄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그 광경은 어떤 기념관보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이 비달 공원을 쿠바에서 가장 활기찬 도시 공간 중 하나로 꼽는 이유를 직접 겪어보니 충분히 납득이 됐습니다.
산타클라라는 "혁명의 성지"라는 수식어가 붙는 도시지만, 직접 가보면 그 무게가 무겁지만은 않습니다. 혁명의 흔적과 평범한 일상이 같은 광장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공존하는 풍경, 그게 이 도시가 아바나나 트리니다드와 구별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 일정으로 세 곳을 모두 돌 수 있으니, 쿠바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산타클라라를 단순 경유지가 아닌 목적지로 잡아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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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www.tripcuba.org/ernesto-che-guevara-monument-santa-clara
https://cuba-solidarity.org.uk/cubasi/article/158/a-revolutionary-train-of-thought
https://www.lonelyplanet.com/points-of-interest/parque-vidal/487260
https://www.expedia.com/Vacation-Pack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