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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 여행 (말레콘, 혁명광장,엘 플로리디타,까사)

by nimonga 2026. 5. 11.

쿠바 하면 클래식카와 낡은 건물만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로 아바나를 걸어보면 그 생각이 꽤 빠르게 뒤집힙니다. 저는 처음 이 도시에 발을 들였을 때, 이 정도로 밤이 자유로울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멕시코에서 치안 문제로 해 지면 숙소에 갇혀 있던 기억이 있었기에, 아바나의 밤은 그 자체로 작은 반전이었습니다.

까사 호아끼나, 숙소가 아닌 여행자들의 허브

아바나에서 숙소를 고를 때 한국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까사(Casa)를 추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까사란 쿠바 정부가 허가한 민박 형태의 숙박 시설로, 현지인 집에서 방을 빌리는 방식입니다. 호텔보다 훨씬 저렴하고 현지 생활을 가까이서 체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까사 호아끼나'는 태극기가 걸려 있을 정도로 한국 여행자들과 인연이 깊은 곳입니다. 제가 직접 머물러 봤는데, 숙소에 도착한 첫날 저녁부터 처음 만난 한국인 여행자들과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며 여행 정보를 주고받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이렇게 빠르게 동행이 생기는 경험이 흔하지는 않으니까요.

쿠바는 인터넷 접속 환경이 매우 제한적입니다. 와이파이존(Wi-Fi Zone)이란 공공 광장이나 일부 호텔에서만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특수한 통신 환경을 말하는데, 쿠바에서는 이 와이파이존 외에서는 사실상 온라인 검색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다 보니 까사 호아끼나 안에 쌓여 있는 수기 노트들이 진짜 여행 가이드 역할을 했습니다. 환전 꿀팁, 추천 식당 위치, 이동 수단 정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고, 저도 여러 번 그 노트를 뒤적였습니다. 단순한 숙소라기보다 여행자들의 경험이 켜켜이 쌓인 살아 있는 아카이브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말레콘, 아는 것과 직접 걷는 것은 다릅니다

말레콘(Malecón)이란 스페인어로 방파제 또는 해안 산책로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아바나의 말레콘은 약 8킬로미터에 걸쳐 이어지는 해안 도로로, 단순한 관광 명소가 아니라 현지인들의 생활 공간이기도 합니다. 해가 질 무렵이면 젊은이들이 방파제 위에 걸터앉아 기타를 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말레콘을 따라 걷다 보면 끝에 카스티요 델 모로(Castillo del Morro), 즉 모로 요새가 나옵니다. 카스티요 델 모로란 16세기 스페인이 카리브해의 해적과 외적의 침공을 막기 위해 쌓은 군사 방어 시설입니다. 내부에는 미로처럼 얽힌 계단과 지하 감옥이 남아 있고, 요새 위에서는 아바나 구시가지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쿠바인들은 이 요새를 "세계에서 가장 긴 책꽂이의 양쪽 끝 같은 두 개의 스페인 요새" 중 하나라고 표현하는데, 그 말을 들었을 때 무언가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해질녘에 이곳에서 바라본 아바나 전경은 제가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 기억할 장면 중 하나입니다. 말레콘을 걷는 것이 그냥 산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코스가 아바나의 분위기를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경로라고 생각합니다.

혁명광장과, 역사가 몸에 닿는 순간

혁명광장(Plaza de la Revolución)이란 쿠바 혁명의 정치적 상징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공간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인물 기념비 중 하나로 꼽히는 호세 마르티 기념탑이 138미터 높이로 서 있습니다. 광장 맞은편 내무성 건물 외벽에는 체 게바라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의 철제 형상이 새겨져 있는데, 체 게바라의 형상 아래에는 "Hasta la Victoria Siempre(아스타 라 빅토리아 시엠프레)", 즉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혁명광장은 단순히 사진 찍는 명소로만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공간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쿠바 현대사를 체감하는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광장이 넓고 땡볕이기 때문에 올드카 투어, 즉 1950년대 미국산 클래식 자동차를 오픈카 형태로 개조해 운행하는 관광 서비스와 함께 이동하는 것이 훨씬 편합니다. 제 경험상 이 투어를 빼고 뚜벅이로만 혁명광장을 갔다가는 체력을 꽤 소모하게 됩니다.

Floridita

엘 플로리디타

엘 플로리디타(El Floridita)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집필하던 시절 즐겨 찾던 바(Bar)입니다. 지금도 그가 앉았던 자리에 실물 크기의 동상이 놓여 있고, 쿠바의 대표 칵테일인 다이키리(Daiquiri)를 맛볼 수 있습니다. 다이키리란 럼을 베이스로 라임 주스와 설탕을 섞어 만든 쿠바 전통 칵테일을 말합니다. 다른 술집보다 두 배 가까이 비싼 가격에도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항상 붐빕니다. 헤밍웨이가 이 자리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다 알 수는 없지만, 다른 시대 같은 공간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한 감각이 들었습니다.

아바나를 방문할 때 참고할 만한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호세 마르티 공항 도착 즉시 환전을 마치고 택시로 시내로 이동하는 것이 시간 절약에 유리합니다.
  2. 말레콘 도보 코스는 해질 무렵 시작해서 모로 요새까지 이어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3. 혁명광장은 올드카 투어와 묶어서 이동하면 체력과 시간을 아낄 수 있습니다.
  4. 까사 숙소는 예약 시 와이파이 이용 가능 여부와 조식 포함 여부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5. 엘 플로리디타는 관광 시즌에 특히 붐비므로 오전 일찍 방문하면 여유롭게 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클래식카와 박물관 너머, 아바나의 진짜 온도

아바나를 클래식카와 올드타운으로만 정의하는 시각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실제로 그 두 가지만으로도 하루를 꽉 채울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 경험상 이 도시는 걷다 보면 계속 예상을 벗어납니다. 어느 골목으로 들어섰다가 현대 미술관을 발견했는데, 강렬한 원색 계열의 추상화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그 색감이 지금도 눈에 선명합니다. 유명 관광지가 아닌 곳에서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을 마주친 셈입니다.

아바나의 야간 치안 환경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UNESCO World Heritage Site)으로 등재된 구시가지 일대를 중심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편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란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 보전 가치가 있다고 인정된 문화 또는 자연 유산을 뜻하는데, 아바나 구시가지는 1982년 이 목록에 이름을 올렸습니다(출처: UNESCO World Heritage). 덕분에 저는 밤늦게 혼자 또띠아 피자를 사 먹겠다고 거리를 돌아다닐 정도로 부담 없이 밤을 즐겼습니다. 멕시코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일입니다.

아바나의 도시 구조와 역사적 보전 현황에 대한 보다 학술적인 자료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아바나 항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행 전 도시의 배경을 미리 읽어두면 현장에서 보이는 것들이 달라집니다.

아바나는 단번에 정의하기 어려운 도시입니다. 낡은 것과 살아 있는 것이 기묘하게 공존하고, 유명 관광지와 뜻밖의 공간이 번갈아 등장합니다. 이 도시를 처음 간다면 일정을 빡빡하게 짜기보다 반나절 정도는 아무 계획 없이 골목을 걸어보는 시간을 남겨두기를 권합니다. 아마 그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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