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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다드 여행 (Plaza Mayor, 승마 투어, Playa Ancón)

by nimonga 2026. 5. 13.

거닐기 좋은 원색의 트리니다드
거닐기 좋은 원색의 트리니다드

솔직히 트리니다드는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 그냥 오래된 식민지 도시 하나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가보니 이 도시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걸 품고 있었습니다. 광장에서 시작해 말을 타고 숲길을 달리고, 카리브해 바다에 뛰어드는 하루가 한 도시 안에서 가능하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파스텔빛 골목과 Plaza Mayor, 로만티코 박물관의 기억

트리니다드의 중심인 Plaza Mayor(플라자 마요르)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제가 느낀 건 그냥 '예쁘다'가 아니었습니다. 이 광장은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도시 계획 방식인 그리드 플랜(grid plan), 즉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격자형 도로망을 뻗어나가는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리드 플랜이란 식민지 도시 건설 시 중심 광장을 기점으로 바둑판처럼 도로를 설계하던 방식으로, 스페인이 중남미 각지에 건설한 도시 대부분에 적용된 형태입니다. 트리니다드는 이 구조를 500년 가까이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UNESCO World Heritage Site)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란 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은 유형 문화재를 의미하며, 트리니다드는 1988년 그 목록에 이름을 올렸습니다(출처: UNESCO).

광장을 한 바퀴 돌다 보면 자연스럽게 로만티코 박물관(Museo Romántico)으로 발걸음이 이어집니다. 이 건물은 원래 18~19세기 사탕수수 농장 귀족 가문의 저택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들어가봤는데, 천장 높이와 타일 패턴, 안뜰 구조가 그 시절 상류층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전시된 가구와 도자기 하나하나가 당시의 생활상을 담고 있어서, 박물관이라기보다는 타임캡슐 안을 걷는 느낌이었습니다.

낮에 광장을 구경하고 저녁에 다시 나오면 완전히 다른 도시처럼 느껴집니다. 거리 곳곳에서 살사와 손 클라베(son clave) 리듬이 흘러나오고, 현지인들은 별다른 무대 없이 그냥 골목에서 춤을 춥니다. 손 클라베란 쿠바 전통 음악의 기본 리듬 구조로, 타악기 클라베를 중심으로 2박과 3박이 교차하는 리듬 패턴입니다. 이 리듬이 살사와 맘보 등 수많은 쿠바 음악 장르의 뼈대가 됩니다. 저도 처음엔 구경만 하다가, 어느 순간 그 리듬에 몸이 저절로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엘 쿠바노 공원 승마 투어, 멍이 든 허벅지가 증명하는 것

이번 여행에서 가장 예상 밖이었던 건 승마 투어였습니다. 말을 타는 게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 걸, 저는 다음 날 아침에야 제대로 실감했습니다.

트리니다드 시내를 출발해 엘 쿠바노 공원(Parque El Cubano)까지 이어지는 코스는 편도 약 7.5km입니다. 말을 타기 전에 간단한 탑승 교육을 받긴 했지만, 솔직히 10분 남짓한 설명으로 7km가 넘는 코스를 완주하는 건 무리였습니다. 안장 높이와 등자(stirrup) 길이를 제대로 조정하지 않은 채 출발했더니, 2km도 안 가서 허벅지 안쪽이 쓸리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등자란 기마 시 발을 걸쳐 지지하는 발걸이로, 이 길이를 자신의 다리 길이에 맞게 조절하지 않으면 장거리 승마 시 무릎과 허벅지에 심한 마찰이 생깁니다. 제 경험상 이건 출발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첫 번째 항목입니다.

그럼에도 코스 자체는 정말 좋았습니다. 공원 안을 지나는 길목에서 쿠바 국조(Cuban trogon)를 실제로 봤을 때는 작은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쿠바 국조란 쿠바의 국가 상징 새로, 빨강·파랑·흰색의 깃털이 쿠바 국기 색상과 일치하는 것으로 유명한 희귀 조류입니다. 에메랄드벌새도 눈앞을 휙 지나갔는데, 직접 눈으로 보는 것과 사진으로 보는 건 차원이 달랐습니다.

코스 중간에는 천연 폭포에서 약 90분간 자유 시간이 주어집니다. 천연 수영장에서 수영도 할 수 있는데, 폭포 아래 바위 위에 앉아 잠깐 쉬었던 그 시간이 투어 전체에서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승마가 어렵거나 아이와 함께라면 마차 옵션을 선택할 수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승마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면 꼭 챙겨야 할 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출발 전 등자(stirrup) 길이를 자신의 다리 길이에 맞게 반드시 조절할 것
  • 긴 바지 착용 필수 (반바지로 탔다가는 허벅지 마찰이 심함)
  • 수영을 원한다면 수영복을 속에 미리 입고 출발할 것
  • 폭포 구간은 미끄러울 수 있으니 샌들보다는 운동화 권장
  • 어린이 또는 승마 비숙련자는 마차 옵션 활용 가능

Playa Ancón에서 랍스터 한 접시로 마무리하는 하루

트리니다드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12km를 이동하면 Playa Ancón(플라야 안콘)이 나옵니다. 백사장 길이가 약 4km에 달하고, 물색이 진짜 청록색입니다. 사진으로 보던 것과 실제로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예상 밖으로 사진이 현실을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였습니다.

쿠바의 해변 리조트 대부분이 북쪽 대서양 연안에 집중되어 있는 것과 달리, Playa Ancón은 카리브해(Caribbean Sea) 남쪽 해안에 위치한 몇 안 되는 해변 중 하나입니다. 카리브해는 대서양에 비해 파도가 잔잔하고 수온이 높아 스노클링과 다이빙에 훨씬 유리한 환경을 제공합니다. 실제로 이 해변은 스노클링, 스쿠버 다이빙, 선셋 크루즈 등 다양한 해양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Anywhere.com).

그리고 Playa Ancón에서 빼놓으면 진짜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랍스터 요리입니다. 쿠바의 랍스터 요리는 생각보다 훨씬 저렴한데, 해변가 레스토랑에서 제가 직접 먹어봤을 때 그 가격에 이 퀄리티라는 게 한국에서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쿠바 랍스터는 주로 스피니 랍스터(spiny lobster), 즉 집게발이 없는 가시랍스터 종류가 잡히는데, 살이 담백하고 식감이 탱탱해서 버터구이로 먹으면 특히 잘 어울렸습니다. 해변에 왔다면 이건 그냥 넘어가기 어렵습니다.

엉덩이 멍은 며칠이면 빠지지만, 트리니다드의 기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돌바닥 골목을 걷고, 말 등 위에서 쿠바의 숲을 지나고, 카리브해에 몸을 던졌다가 랍스터 한 접시로 하루를 닫는 것. 이 모든 게 한 도시 안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이 트리니다드를 쿠바 여행 중 가장 쿠바다운 곳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천천히 머물수록 좋은 곳이니, 가능하다면 하루이틀 여유를 두고 일정을 잡아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anywhere.com/cuba/attractions/ancon-beach-beach
https://www.civitatis.com/en/trinidad/horse-riding-parque-cub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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