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이 도시나 저 도시나 비슷하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저도 그 무감각함이 찾아왔을 때 천사들의 도시라고 불리는 푸에블라(Puebla de los Ángeles)를 만났습니다. 탈라베라 타일이 붙어 있는 건물 외벽, 저 멀리 연기를 뿜는 포포카테페틀(Popocatépetl) 화산, 그리고 수백 년 된 골목 안에 녹아든 몰레 향기. 그 세 가지가 동시에 감각을 깨워놓았습니다.

탈라베라, 타일 하나에도 역사가 있다
푸에블라 구시가지를 걷다 보면 건물 외벽이 유독 눈에 띕니다. 평범한 페인트칠이 아니라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타일로 장식되어 있거든요. 이게 바로 탈라베라 포블라나(Talavera Poblana)입니다. 탈라베라 포블라나란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유럽에서 전해진 도자기 기술이 이 지역 토착 방식과 결합하며 발전한 전통 공예 기법을 뜻합니다.
특이한 점은 유약에 주석과 납이 섞여 있어 완성된 타일이 순백색이 아닌 유백색을 띤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코발트 블루, 노란색, 녹색, 주황색, 검은색, 연보라 총 여섯 가지 천연 안료만을 써서 무늬를 새깁니다. 색의 종류가 제한되어 있다 보니 오히려 패턴이 더 정교하고 통일감 있게 느껴집니다. 제가 직접 거리를 걸으면서 건물 하나하나를 들여다봤는데, 같은 기법인데도 집마다 문양이 다 달라서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푸에블라의 탈라베라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기술로, 진품 인증을 받은 공방의 제품만 '탈라베라'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주말 벼룩시장인 로스 사포스 마켓(Los Sapos Market)에 가면 각종 탈라베라 장신구를 직접 보고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작은 도자기 함 하나와 천사 모양이 달린 팔찌를 하나 샀는데, 지금도 책상 위에 올려두고 가끔 꺼내 봅니다. 유백색과 코발트 블루의 조합이 생각보다 훨씬 청량하고 예쁩니다.
탈라베라 타일 건물이 즐비한 거리를 걷다 보면 암파로 박물관(Museo Amparo)을 만나게 됩니다. 암파로 박물관이란 16세기에 지어진 식민지 시대 건물 안에 들어선 박물관으로, 콜럼버스 이전 시대 유물부터 식민지 시대 예술품까지 아우릅니다. 사전 정보 없이 들어갔다면 그냥 오래된 항아리 몇 개 보고 나왔을 텐데, 이 지역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들어가면 전시물 하나하나가 전혀 다르게 읽힙니다. 제가 여행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이 바로 이겁니다. 배경 지식이 없는 여행과 있는 여행은 같은 장소를 보더라도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됩니다.
몰레 포블라노, 한 그릇에 담긴 식민지 역사
푸에블라는 미식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멕시코를 대표하는 소스인 몰레 포블라노(Mole Poblano)가 이 도시에서 탄생했습니다. 몰레 포블라노란 말린 고추, 초콜릿, 향신료 등 수십 가지 재료를 오랜 시간 끓여 만든 걸쭉하고 진한 소스로, 토착 식재료와 스페인 식민지 요리법이 섞인 혼합 요리 문화의 상징입니다.
처음 이걸 먹었을 때 솔직히 당황했습니다. 달달한 향이 나는데 매콤하고, 고소한 것 같기도 한데 쓴맛도 살짝 돕니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맛입니다. 그런데 그게 이 소스의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수십 가지 재료가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도 하나의 맛으로 어우러지는 것이죠.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레스토랑마다 레시피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같은 몰레라도 집집마다 다른 맛이 납니다.
소칼로(Zócalo) 광장 근처에서는 세미타스(Cemitas)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세미타스란 멕시코식 샌드위치로, 참깨빵 사이에 고기와 아보카도, 치즈, 파파로 불리는 허브를 넣어 만드는 푸에블라 전통 길거리 음식입니다. 관광지 음식이 아니라 현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다 보니 가격도 합리적이고 배도 든든합니다. 광장 근처 노점에서 하나 사서 벤치에 앉아 먹는데, 그 순간이 푸에블라에서 가장 편안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푸에블라의 요리 전통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멕시코 전통 문화와 요리 유산을 정리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 자료(UNESCO ICH)를 참고해 보시길 권합니다. 단순히 음식이 맛있는 곳이 아니라, 왜 이 음식이 이 도시에서 탄생했는지를 이해하면 한 입 먹는 느낌이 달라집니다. 아래는 푸에블라 미식 여행에서 꼭 경험해봐야 할 것들입니다.
- 몰레 포블라노: 초콜릿과 고추가 들어간 걸쭉한 소스, 닭고기나 칠면조에 얹어 먹는 것이 기본
- 세미타스: 소칼로 근처 노점에서 사 먹는 멕시코식 샌드위치, 허브 향이 특징
- 칠레스 엔 노가다(Chiles en Nogada): 멕시코 독립기념일 즈음에 맛볼 수 있는 제철 요리로, 초록·흰색·빨간색의 멕시코 국기 색을 담고 있음
- 피피안(Pipián) 소스: 호박씨를 갈아 만든 초록빛 소스로, 몰레보다 덜 알려졌지만 깊은 맛이 있음

촐룰라, 피라미드 위에 세운 성당
푸에블라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촐룰라(Cholula)가 있습니다. 촐룰라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 사람이 거주해 온 도시 중 하나로 꼽힙니다. 2천 년이 넘는 정착 역사를 가진 이 도시의 중심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가 있습니다.
틀라치우알테페틀(Tlachihualtepetl)이라는 이름의 이 피라미드는, 틀라치우알테페틀이란 나와틀어로 '손으로 만든 산'을 뜻하는 이름으로 수 세기에 걸쳐 여러 문명이 겹겹이 쌓아올린 구조물입니다. 이집트 기자의 쿠푸 피라미드보다 부피가 크지만, 오랜 세월 초목에 덮여 그냥 언덕처럼 보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녹지 언덕인 줄 알았습니다. 안내판을 읽고 나서야 "저게 피라미드였어?"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1594년 스페인 정복자들이 세운 산투아리오 데 라 비르헨 데 로스 레메디오스(Santuario de la Virgen de los Remedios) 성당이 올려져 있습니다. 피라미드를 덮어버리고 그 위에 성당을 세워버린 것인데, 그 탓에 현재도 유적 발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정복의 흔적이 말 그대로 가장 눈에 잘 보이는 방식으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장면 앞에서는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할지 쉽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성당이 있는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은 압도적입니다. 바로가도스오카나멕시코 시티와 푸에블라 사이에 자리한 포포카테페틀(Popocatépetl) 화산이 실제로 연기를 내뿜는 모습이 보이고, 그 옆으로는 능선이 누운 여성처럼 보인다 해서 '잠든 여인'이라 불리는 이츠타치우아틀(Iztaccíhuatl) 화산이 이어집니다. 저도 정상에서 이 두 화산을 나란히 바라봤는데, 사진으로 옮기기가 참 어려운 풍경이었습니다. 화산 트레킹도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마땅한 투어 방법을 찾지 못해 포기해야 했습니다. 촐룰라와 푸에블라 일대의 자연유산과 고고학 유적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멕시코 국립인류학역사연구소(INAH) 사이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푸에블라는 빠르게 찍고 떠나기엔 아깝습니다. 탈라베라 타일이 붙은 골목, 몰레 향이 나는 시장, 피라미드 위에 올려진 성당까지. 이 도시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층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행 전에 식민지 역사와 토착 문화에 대해 짧게라도 공부하고 가면 여행의 밀도가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다음에 다시 간다면 포포카테페틀 화산 트레킹과 촐룰라 피라미드 발굴 현장을 좀 더 천천히 둘러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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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www.expedia.co.kr/Puebla.dx2738
https://escapetomexico.com//puebla/